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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35' 우상혁, 한국新 교통사고가 만든 짝발 아픔을 딛고 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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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35 높이에 걸리 바를 눈앞에 두고 우상혁(25. 국군체육부대)은 두 손으로 얼굴을 찰싹 쳤다. 

이어 관중들의 박수를 유도한 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힘껏 달려나가 도움닫기를 했다. 

 

우상혁

새처럼 살포시 떠오른 우상혁의 등은 바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바가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금세 멈춰 섰고, 우상혁은 하늘을 향해 힘껏 포효했다. 24년 동안 깨지지 않던 한국 남자 높이뛰기 기록의 주인이 마침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국 육상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새롭게 쓰여졌다. 우상혁은 1일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유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 35를 넘어 이진택이 1997년 6월 20일 전국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2m 34를 1cm 넘은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또 우상혁은 4위를 차지해 한국올림픽 육상 트랙&필드 역대 최고 성적도 냈다. 1984년 LA올림픽 남자 멀리뛰기 김종일,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 김희선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높이뛰기 이진택의 8위를 넘어섰다. 

우상혁의 출발은 깔끔했다. 2m19부터 2m 30cm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1차 시기에 넘었다. 

2 m33 1차 시기를 실패했으나 곧바로 2차 시기에 넘었다. 그리고 2m 35를 전력 질주로 도움닫기를 해 한 번에 넘어서며 한국 기록을 수립했다. 

 

우상혁은 일본의 남자 높이뛰기 대표주자 도베 나오토와의 한일 자좀심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이날 우상혁은 2m 35까지 단 한 번만 실패하고 모조리 1차 시기에 넘었다. 반대로 도베는 2m 27에서 3번의 기회를 모두 실패하며 일찍 감치 탈락했다. 

 

우상혁은 일찌감치 주목받던 재능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높이뛰기를 시작했는데. 입문하자마자 각종 대회에서 1~2위를 휩쓸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12년 4월 춘계전국중고대회에서 2m 7을 기록해 1위에 오른 뒤 1년 동안 개인 최고 기록을 11cm나 높였다. 

이후 도약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우상혁은 2013년 7월 17세 이하(U-17) 청소년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에서 2m 20을 뛰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2014년 세계 주니어 육상경기 선수권대회(20세 미만)에서는 2m 24를 뛰어 3위에 올랐고,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진택(금메달) 이후 16년 만에 한국 남자 높이뛰기에 메달을 선물했다.

 

어릴 때부터 보여온 천부적인 재능 뒤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우상혁은 오른발이 왼발보다 작은 '짝발'이다. 8살 때 택시 바퀴에 오른발이 깔리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한 동안 오른발의 성장이 멈춰 짝발이 됐다. 

 

뛸 대 밸런스가 맞이 않아 균형감을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제 그 약점은 없다. 키도 높이뛰기 선수 치고는 크지 않은 188cm에 불과하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테판 홀름(스웨덴)을 본받아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홀름의 키는 181cm였다. 

 

중국과 일본이 그 동안 세계 무대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오는 동안 한국 육상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침체기의 끝에서 우상혁이라는 새싹이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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