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일반

경제학 [백가쟁명] 고전경제학 알아보기

728x90
반응형

경제학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시기
※백가쟁명이란?
1.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
2.많은 학자들의 활발한 논쟁


◆ 고전경제학 (1766~1870)

 

19~20세기에는 경제학의 백가쟁명 시기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의 뒤를 이어 고전경제학파가 등장하였습니다.
고전경제학파는 경제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현대 자유 경제의 모든 개념은 고전경제학에서 중요한 기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고전경제학의 주요 개념

고전경제학파는 18~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학자를 가리키는 통합된 호칭입니다.
고전경제학의 기본 사상은 <국부론> 이라는 위대한 저서에 담겨있습니다.
고전경제학파는 경제사상면에서 중농학파의 자유방임을 계승했지만 부강한 국가와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경제학은 농업 활동에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어떠한 형식의 생산도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경제학의 중심사상을 가장 잘 해석한 주장은 <세이 법칙>이라 불리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학설입니다.


세이(Jean-Baptiste Say, 1767~1832)는 프랑스의 고전경제학자이자 상인으로 애덤 스미스의 '작은 정부',
'자유경쟁'을 추종하였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학설도 <국부론>개념의 연장입니다.
세이는 시장이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경쟁 상황에서 공급자가 스스로 적당한 수량을 제공하고 더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경쟁에 참여하면 공급은 자연히 수요를 찾는다고 여겼습니다.

반응형


◆ 시장의 자유경쟁

시장의 자유경쟁을 통해 경제의 안정적인 균형 순환을 가져온다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의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역량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쁜 제품은 시장에서 자연히 도태될 것이고, 생산자는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할 것이고 자연히 더 많은 수요가 생길 것입니다.
정부의 유일한 할일은 '보이는 발'을 뻗어 간섭하지 않는 것이지요.

 

https://igwest.tistory.com/1921
◆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국부론의 위대함은 경제학의 문제를 체계적인 몇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였다는 점입니다.
수학 논리의 추론을 포함하여 '자본,토지,노동,무역,조세,이윤'등 현대 거시경제학의 연구 대상이자 고전경제학자들 연구의 주요 근거인 여섯가지 대분류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고전 경제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를 모를수 없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젊은 시절 영국에서 신학과 철학 교육을 받은 윤리학계의 뛰어난 철학자였으며,
<국부론>을 발표하기 전인 1759년에는 공감, 동정심, 도덕 방관자 등 인류의 감정을 관찰하고 논한
<도덕 감정론>이라는 저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유교사상의 '인성은 본래 선하다'는 주장과 비슷하지만 애덤스미스는 도덕적으로 우수한 사회를 표방하거나 인류의 선량한 본성을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경영학 '닐리의 법칙' 알아보기

닐리의 법칙은 경영학에서 나오는 닐리의 법칙과 컴퓨터학에서 나오는 닐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오늘은 경영학과 컴퓨터학에서 나오는 닐리의 법칙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경영학에서의 닐

igwest.tistory.com


그는 이 책에서 인류가 반드시 도덕적 공감이라는 철학이념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인성은 공동 이익의 추구를 기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후에 <국부론>의 중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이는 철학과 연관된 문제이지만 이 같은 애덤 스미스의 인성에 대한 견해가 경제학의 중요한 기초가 된 것입니ㅏㄷ.

<도덕 감정론>을 발표한 후 1764년 애덤 스미스는 프랑스 학술계를 방문하여 중농학파의 창시자 케네를 만났고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후 10년을 투자하여 중농주의의 견해를 재정립하였으며,
그 안에 자신의 철학을 더해 1776년 <국부론>이라는 거작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중상주의에서 국가 위주로 축적되는 자본을 반대하면서 개인은 마땅히 자신의 재산을 소유해야 하며 정부는
이에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생산방면에서는 농업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동력의 분업과 임금의 변화를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부강함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토지세와 이윤 방면에는 과거의 데이터로 자본 유동의 개념을 분석해 현대 화폐은행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무역에 대해서는 자유 무역과 관세 최소화가 상품 유동과 자본 축적에 유리하다고 하였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경제가 최고의 원칙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는 고전학파 전.후기의 핵심 인물입니다.
이들은 철학적 바탕을 갖추었기에 그 시대에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들 고전학파는 자유 경제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종 목적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더욱 효율적인 사상과 정책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경제는 사회 안정을 확보할 수 없었고 19세기 중.후기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보이지 않는 손'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