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기업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인수합병
자유시장경제에서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문제는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과 태도인데,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적대적 M&A는 간혹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럼 적대적 M&A는 어떤 방식으로 시도될까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이른바 공개매수(tender offer)입니다. 특정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주식을 공개매수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현재 시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살 테니 주식을 팔라고 제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짧은 기간에 인수하려는 기업의 주식을 특정가격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인수대상 기업도 이에 맞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주가가 오릅니다.
미국에서는 특정 기업을 인수하려는 업체가 인수대상 기업에 방어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공휴일인 토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매수를 선언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공개매수를 '토요일 밤의 기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간혹 특정 기업의 인수를 목표롤 하기보다는 주가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공개매수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수대상 기업의 주식을 대거 사들인 후, 경영권을 담보로 잡고 대주주에게 편지를 보내 이미 사들인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인데, 이를 그린메일(green mail)이라고 합니다.
달러 지폐가 초록색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러한 투자자들을 그린 메일러(green mailer)라고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기업사냥꾼(raigers)'입니다. 더러는 대주주를 협박하면서 주식 매입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이는 특별히 블랙메일(black mail)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적대적 M&A 방식으로는 위임장대결(proxv fight)이 있습니다.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갖고 있는 위임장을 많이 확보해 현재 이사진이나 경영진을 물러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의결권은 '집단의 결정에 참여해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기업을 인수하려는 기업이 인수대상 기업의 지분을 50% 이상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에서는 기존 경영자와 매수자 간에 표 대결이 벌어집니다.
이때 양측 모두 소수 주주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경영권을 주장하죠. 평소 주주를 철저히 관리한 기업은 우호적 소수 주주를 확보해 매수자보다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수대상 기업이 평소 주주관리에 소홀했다면 매수기업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 확보에 성공합니다.
그럼 적대적 M&A에 맞서는 방어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역(逆) 공개매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맞짱 뜨는 전략으로, 인수기업이 공개매수를 하면 이에 맞서 인수대상 기업이 오히려 인수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정면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두 회사가 상호 1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 상호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상법 규정을 이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M&A를 시도하는 회사가 상장법인인 경우, 그 회사의 주식을 10% 이상 사들여 상호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략을 흔히 '팩맨 방어(pacman defense)'라고 합니다.
포이즌 필(poison pill)이라는 방어전략도 있습니다.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주주들에게 회사 주식을 싼값으로 팔거나 비싼 값으로 회사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수기업에 막대한 비용을 전가해 인수 시도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이라는 전략도 있습니다. 인수대상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거액의 퇴직금을 받을 권리와 자사의 주식을 싼값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스톡옵션), 일정 기간 동안 보수와 보너스를 받을 권리 등을 사전에 고용계약에 포함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인수비용을 높이는 것이지요.
한편 경영자가 아닌 일반 직원들에게 일시에 많은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해 매수기업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전략도 있습니다. 이는 황금낙하산과 구별해서 '주석(朱錫) 낙하산'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적대적 M&A의 대상이 된 기업에게 적당한 방어수단이 없는 경우에는 적대세력을 피해 현 경영진에게 우호적인 제3의 매수 희망자를 찾아 매수 결정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때 인수대상 기업의 경영자에게 우호적인 제3의 기업 인수자로서 적대세력의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쪽을 '백기사' , 이와 반대로 경영권 탈취를 노리는 쪽을 '흑기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M&A가 화제가 된 것은 2003년 초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SK 주식을 매입해 SK의 경영권을 위협했을 때입니다. 2014년에는 선풍기 등 소형가전으로 유명한 신일산업에서 8.8%라는 비교적 적은 주식을 소유한 세력이 경영권 참여를 선언하면서 적대적 M&A를 시도했죠.
2016년 신일산업은 결과적으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2년 동안 적대적 M&A를 방어하느라 시간과 돈을 많이 허비했습니다.
2010년 6월 말에는 국내 업체 하이닉스반도체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국내 기업 가운데 최초로 포이즌 풋 제도를 도입해 화제가 됐습니다. 포이즌 풋은 기업이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할 때, 앞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되면 채무를 일시에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입니다.
포이즌 풋은 원래 M&A가 일어나거나 경영진이 교체되면, 돈을 빌릴 당시의 신용리스크가 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입니다. 하지만 하이닉스반도체의 사례에서 보듯이 적대적 M&A의 방어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적대적 M&A 시도가 들어오면 채무를 일시에 상환해서 기업가치를 떨어뜨려 인수 대상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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